마음에 숨어있던 미움을 찾아내, 사랑으로 도려내다


가뭄에 단비 같았고, 아픈 상처에 소독약이 되었고, 싱겁고 밋밋한 국에 감칠맛이 돌게 만든 소금이었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온갖문제지와 단어장, 그리고 영어원서책을 골라가며, 빈칸넣기와 한국어 넣기 문제 만들기에만 골몰해 오던 매일 똑 같은 일상의 긴시간에 지치고,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아 딱딱해 굳은 마음에, 아주 많이 사람들의 이야기에 굶주려 지쳐 있던 시간, 'K톡', 전화기에 문자 하나가 들어왔다. 아는 지인이 나에게 강추 한다며 책 한권을 권 하는 문자였다. '가장 낮은 데서 피는 꽃', 제목의 '낮은 데서' 라는 단어를 보며,

순간 '선교사들의 희생과 봉사 그런건가'하는 생각이 언뜻 스쳤으나, 책 내용을 잠시 훑어 보고는, 쉬지 않고 온라인으로 바로 주문을 했다. '고맙다, 바로 주문을 했다'라는 고마움의 답 문자를 보낸뒤. 목요일 저녁, 책이 바로 발송되지 않은것을 확인하고는, 세상을 그려려니 보는, 여유 없는 건조한 마음이 되었다. "아침 일찍 주문했는데, 책이 발송도 되지 않고, 뭐 한권밖에 없는 서점에서 장사합니까?" 금요일 아침부터 득달같이 전화에 문자로 판매자를 공격했다. 왜 그런지, 금방, 또, 마음속이 이미 순식간에 미움으로 가득했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당일 바로 상품이 바로 출고 되었으니, 토요일 배송이 완료될 예정입니다.' 금방 사그러 드는 마음은 뭔지, '쯧, 뭐라 안하면 그냥 배송을 안하려 했나' 그랬다.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토요일 새벽, 학원에 간다. 또 다시 다음주 수업준비다. '이번엔 꼭 아이들이 힘들지 않으면서도, 단어와 문법,

그리고 해석을 공부해 낼수 있는 컨텐츠를 만들자' 오전 9시쯤, 기분좋은 느낌의 'K톡'이 울린다. '고객님의 책이 오늘 도착 예정입니다.' 흐음, 그래야지, 그럼' 10시간쯤, 정말 열심히 1초도 쉬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늘 계획한 양만큼 작업을 마친다. 뿌듯한 마음으로 학원을 나선다. 해가 기울어 있다. '고객님의 소중한 물품을 문앞에 배송완료 하였습니다.' 주머니 속에 기대에 부응한 문자를 만지작 거리며, 집으로 운전대를 돌린다. 뭔가 즐거운 느낌이 자꾸 생긴다. 마음속의 건조한 미움을 없앨것 같은. 밤 11시쯤 아이들이 모두 잠들었을 무렵, 오후에 뜯어 놓았던 책을 들고는 책상에 앉는다. 그리고는 책을 읽으며, 꼬박 하얗게 토요일 밤을 새운다.

새벽 6시, 이제 늦은 4월 통신문을 적는다.


'3월말 초등부 또 한 달을 마치며 열심히들 공부 했어요!' '중등기본 900단어를 마치고 매일 900단어중 20문제를 88점을 넘어야 하는

놓친 기억 찾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중1 문법 600문제 800문제, 500문제에서 20문제를 88점을 넘어야 하는

놓친 기억 찾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각중학교 2,3학년 본문을 열심히 학습하고 있습니다.' '이제 지난 해 11월 부터 한주에 한 번씩 치렀던 중학교 2,3학년

중간 기말 모의고사가 19회를 넘었어요.' '모든 결과는 아이들 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어요.' 이런 자랑을 하고 싶었을까? 3월말, 4월 통신문을 쓸 시간이 점점 다가 오는데, 미움이 자란 마음일까, 10여년을 한결같이,

마음으로 써오던 통신문에, 처음으로 쓸 말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그 누구를 미워하는 마음으로는 인사말의 시작도 하기가 싫었던 것일까? 끄적이고 끄적여도, 자리에 앉아 몇 시간을 생각하고 생각해도, 무엇을 알려야 할지 도무지 아무것도 쓸 수 가 없어, 결국, 4월 가정통신문은 발행되지 않는다. 비록 모두가 읽지 않을 수 있는 몇 줄의 글이지만, 나에겐 한 달의 감사와 정성을 전달하는 최소한의 예의이자, 가장 중요한 것이었기에 큰일인 것이다.


필리핀의 톤도라는 작고 가난한 곳, 교육센터에 있는 선생님들입니다. 비록 간접적인 고찰이었지만, 평생을 배움으로 산다는 말을 또 한번 깨닫고 얻어가는 모양입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상처받기를 허락해야 합니다.' '가르치는 것은 상처를 허락하는 일입다. 교사는 다양하게 상처를 입습니다.' 사랑하며 열정으로 전달하는 그 마음에 배신이라는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는 이윽고 가르치려는 마음을 잃게 된다. 이제 미움만이 마음속에 남는다. 학원 영어선생님이 된지는 2002년이 처음이었으니, 20년이 다 되어간다. 어학원에서 강사로 근무를 계속하여, 2007년에 팍스우드를 개원하고도, 학원을 폐원하게 되어 쉬었던 2016년의 3개월을 빼면, 20년여년 하루종일 수업준비와 수업만 해왔던 시간이라, 웬만해선 어떤 상황들도 편하게 처리 할 법 한데 이번 3월처럼 이렇게 심하게 가라앉았던 적은 처음인것 같다. 말을 듣지 않을때, 과제의 결과 때문에 실망하고,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때, 갑자기 쉬운 단어를 모르는 경우를 목도했을때, 게임과 온갖 이유로 수업한 날 과제가 0%인데, 전혀 미안한 내색을 하지 않는 아이들을 대면할때, '그게 주말 집에서 쉬지도 못하고, 유치원생인 제 아이 하고도 놀아줄 시간 없이, '학원을 다니는 너희들은 분명히 달라야 한다' 고민하며, 얼마나 경험과 열정과 성실을 들여 너 하나만을 위해 만들어 놓은건데' 라는 초보 선생님의 좁은 마음이라면 더 더욱, 마음속에 미움이 한 가득 자라날 겁니다. 또 다음날, 여전히 컴퓨터 게임하느라, 아니면 납득할만한 이유도 될 수 없는 핑계로 0%를 만들어 오는 아이들을 또 마주 보고 나면, 더이상 사랑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초보 선생님도 아닌데, 20년을

가르쳐 왔던 경험과 유능함과 노련함은 어디로 갔는지, 그냥 마음속에는 미움이, 딱 합리적이라며 버티고 있습니다. '교육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교육이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가득한 선생님이란, 그들의 마음높이와 마주하고, 아이들을 이해하는 것이고요.' 그 대답에는, 선생님들의 흔들리지 않는 눈빛만으로도 방송국 취재나, 작가 앞이라서 하는 그런 상투적인 말이 아니라 도저히 다시 확인 질문을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사랑의 진지함을 알 수 있었다. 오래 수업했던 저의 가슴에 부끄럼움을 가져다 주는 뭉클한 장면이었습니다. 수업준비와 잘 갖추어진 학습컨텐츠의 껍데기에 집중하느라, 무엇을 놓쳐 3월이 힘들었는지, 속 시원하게 발견한 새벽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눈높이와 마주보면서도 이해 할 수 있는 사랑가득한 선생님이 되보자'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생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걸 이 나이에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되다니. 정말 고마운 순간이고,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수업하면서 아이들이 그들의 마음을 찾아가도록 하는 시간들을 가벼이 멀리 하라 하고는, 영어학습의 결과만을 선택하게 했던 마음이, 옳은 선생님 같지 못했습니다. 부모님들께는 영어학습의 결과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우매한 생각이 부모님이 사랑하는 아이들을 보내는 믿을만한 선생님 같지 못했습니다.